광주천의 서쪽 도심에 있는 광주공원 뒤, 서현교회 맞은편 골목으로 50미터쯤 들어가면 광주 향교 건물이 나타난다.
그 곳은 반가운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이 골목 어귀에 숨어 있다가 살포시 얼굴 붉히며 모습을 드러내는 순박한 시골 아낙의 형상이다.
평소 눈여겨 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지나치기 십상인 이곳 향교는, 광주공원 뒤편에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있다.
조선시대 유학교육을 담당했던 이곳 향교는 1985년 광주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1398년 무등산 장원봉 아래 세워졌으나 호랑이의 피해가 잦아 동명동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그마저 1488년 홍수로 수해를 입게 되자 광주 현감 권수평이 지금의 구동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그 후 정유재란 때 왜군들에 의해 불타버렸는데, 다행히도 대성전 안 위패는 권일제가 화를 피해 안전한 곳에 보존하고 있다가 건물을 재건한 뒤에 다시 봉안되었다.
당시 향교를 옮기게 된 기록은 성종 때의 문신 성현이 자세히 써서 남겼는데, 사건이 벌어지자 서민들이 모두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수개월 만에 일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이 때 완성된 향교는 대성전, 동서무, 명륜당, 사마제, 동서제, 전사청 등 현재의 규모와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광주향교는 세파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한 줄기 맑은 정신의 정화소 역할을 하고 있다.
선현을 기리는 제향행사는 물론이고 충효예 유교 사상을 대중화시킨 한문 강좌와 시민들의 생활과 결합한 생활문화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광주향교의 대표적인 제향 행사로는 석전대제를 들 수 있다. 석전대제는 1년에 두 번 봄, 가을에 지방관들과 유림 및 시민들이 모여 성균관과 전국 향교에서 일제히 경건하게 봉향한다.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드리는 유교제사로서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향교에서 하는 교육프로그램으로는 학문 수준에 따라 초급반, 중급반으로 나누어 실시되는 학문강좌가 있다. 사자소학, 추구, 학어집, 명심보감, 천자문 등 기초한자와 소학, 대학, 중용, 논어, 대동기문, 맹자 등의 심화된 내용을 양사재와 명륜당에서 실시하고 있다. 직장인들을 위한 주말 강좌, 학생들을 위한 방학 중 충효교실, 서예교실, 4서5경을 중심으로 동양철학 및 관혼상제 등을 강의하는 유교대학 프로그램도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대표적인 생활문화프로그램으로는 전통혼례 행사가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유지, 발전시키며 시민들에게 우리 것의 소중함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전통혼례는 매주 평균 4-5건씩 치러지고 있다.
비영리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개인이 치르는 비용도 아주 적다.
전통적인 예절과 전통음식 및 기술을 익히는 예절,다도,폐백 교실과 성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의식인 관례와 계례를 통해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성년의 날 행사도 있다. 또 지역사회에서 효행과 선행으로 남들에게 큰 본보기가 되신 지역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기로연 및 효자,효녀,효부 및 선행자 표창도 있다.
향교는 단체 충효예 예절교육 및 관광객 관광안내활동을 수행하기도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느꼈던 향교의 역할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문명화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향교는 '온고지신'이라는 말을 새롭게 상기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자칫 국제화와 세계화 시대라는 이름으로 잃어버리기 쉬운 민족의 정체성과 우리 문화의 뿌리를 되새기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의 지표를 삼게 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